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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짓기/철거

철거 전, 옛 집의 모습.

세계의_끝 2019. 11. 6. 23:15

등기 이전하고 법적으로 내 소유가 된 이후, 다시 집에 가 보았다. 오래된 집이 쓰러질 듯 버티고 있었는데, 나름 매력적인 모습이었다.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이거 제대로 고쳐서 살아도 뭐 크게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살짝 들었다. 정말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그냥, 작지만 옛날 집의 모습이 정겹게 느껴졌다. 

지금은 집의 뒤편이지만, 이 소방도로가 새 집의 입구가 될 예정이다.

밖에서 봐도 느껴지지만, 제법 경사가 있고, 집이 도로보다 낮게 앉아 있어 땅을 돋워야 한다. 하지만 최대한 단차를 활용하기로 했고, 그 덕분에 1층 주방의 층고가 높게 만들어질 예정이다. 

아주 좁은 골목을 지나 왼쪽 사진의 벽돌담 옆으로 '숨어' 있는 대문, 그리고 안으로 움푹들어가 '숨어' 있는 듯 집이 있다.

오래된 집들이라 담을 공유하고 있는 듯 했는데 빨간 대문 집과 어떤 모습으로 벽과 벽이 붙어 있는지는 확인이 불가능했다. 철거할 때 꽤 조심스러울 것 같다. 그리고 슬레트 지붕이라 석면은 철거 시 비용이 꽤 많이 든다고 한다. 부동산에서 철거 업체들을 소개해 주었는데, 리담건축에서도 철거 비용을 알아 보겠다고 한다. 양쪽을 비교해 무조건 더 싼 쪽으로 진행하면 된다. 

집에 들어서면 작은 마당이 있고 왼쪽으로 본채, 그리고 정면에는 새로 지어 올린 듯한 2층 별채가 있는데, 계단도 있었다. 전 주인 할아버지 말씀으로는 아이들이 크면서 방이 더 필요해 2층으로 별채를 지었고, 나중에는 집 앞에 있는 병원 간호사들에게 세를 주기도 했었다고 한다.

본채와 별채(가운데). 왼쪽은 별채 1층, 오른쪽은 별채 2층인데 세를 내준 2층에는 아주 작은 싱크대가 있는 전실이 있었다. 

본채의 일부를 가리는 형태로 2층 별채가 지어졌는데 조금만 더 집 상태가 좋았어도, 어떻게 두 건물을 이어 붙여 연결하고 구조 변경하면 나름 예쁜 집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ㅋㅋㅋ 역시 말도 안되는 소리다.

본채에 들어서면 오래된 집이지만 처음 이 집을 지었을 때, 그 주인의 마음이 어땠을지 떠오르며 집 구석 구석 유심히 보게 되었다. 처음 이 집을 지은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 이전 주인 할아버지도 오래 전 이 집을 샀다고 했다. 어쨌든 이 집을 지어서 처음 들어 왔을 때 어떤 느낌이었을까? 문틀, 창살, 구조, 천장과 벽들 유심히 살펴 보았다. 허물어 버리려니 뭔가 미안하고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길게 놓여진 집은 길이 방향으로 방들이 4개나 있었다. 젤 안쪽에 바깥 창고와 이어지는 작은 방, 가운데는 안방으로 보이는 큰 방, 대문쪽에 작은 방과 그 작은 방 안에, 화장실과 부엌이 연결된 작은 방이 있었다. 

창 밖으로 좁은 골목이 보였고, 앞집과 빨간 대문의 옆집이 닿을 듯 붙어 있었다. 
별관 2층에서 내려다본 모습과 대문, 그리고 대문 옆 바깥 화장실
1층 대문 위에서 바라본 모습

오래전 누군가, 지금 내가 고민하듯이 고민하고, 희망을 가득 담아 집을 지었고, 세월과 함께 낡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나도 오래 전 누군가가 고민하듯 고민하고, 희망을 가득 담아, 그 이전의 집을 허물고 그 자리에 새로운 집을 짓는다.

여러가지 복잡한 심정이다. 누군가의 꿈을 허물고 그 자리에 내 꿈을 세운다. 또 자연으로 되돌아가지 않을, 처음으로 되돌릴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는 집을 집고, 또 쉽게 허물고 새로 지으며 깨끗한 새로운 도시는 만들어진다. 그렇게 깨끗해진 그 만큼의 쓰레기가 또 지구의 한쪽에 쌓여간다. 하지만 항상 그렇다. 생각만 깊어질 뿐 아무것도 바꾸지 않고 삶은 계속되는 것 같다. 어쩔 수 없는 소시민. 


어찌됐든, 옛 집이 허물어지면 그 자리에, 이런 형태의 집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 입면을 완성하고 구조변경은 없을 것으로 보고 구조 설계에 들어갔지만, 우리는 어제, 또 구조를 바꿨다. 맨 꼭대기 층에 솟아오른 다락은 없애기로 했고, 3층의 발코니는 실내로 넣고 창밖을 바라볼 수 있는 긴 책상을 두기로 했다. 3층 왼쪽에 창이 있는 곳은 긴 벽을 따라 책장을 짜 넣을 복도형 서재다. 서재의 끝 발코니 자리에 실내 공간을 만들고,  거기에 긴 책상을 두고 책도 읽고, 공부도 하는 공간을 구상하고 있다. 

어제, 30쪽에 달하는 공사 견적서를 받았다. 예산이 상.당.히. 초과되었다. 그냥 이전의 그 큰집을 사서 고쳐도 될 ㅠㅠ 하지만 이미 멀리 와 버렸다. 
우리가 원하는 예산규모와 과도하게 책정된 부분, 필요 없는 부분과 줄여도 되는 부분들을 간략히 협의했다. 다락을 없애면서 관련된 예산이 많이 줄기도 했고, 새로 견적을 내기로 했다. 정확히 말하면 좀 더 깍아서 견적서를 만들어 주시기로 했다. 

그리고 오늘 또 계단의 모양과 방향을 바꾸는 문제를 다시 문의했다. 곧 답을 주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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