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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공간이나 집의 형태는 취향의 문제이지 어떤 형태의 집이 좋은 집이라는 기준은 없는 것 같다.
앞서 얘기했지만, 우리가 아파트에서 아파트로 이사할 때는 사람들은 왜 또 아파트로 이사를 가느냐고 묻지 않는다. 하지만, 주택을 선택하면 항상 그런 질문을 받아야 한다.
그냥 마당이 있었으면 좋겠고, 획일화되지 않는 우리만의 공간에서 가족들이 살았으면 좋겠고, 시세에 따라 사고 팔고 옮겨다니는 삶은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이렇게 대답하면 또 따라오는 말이 있다. "춥다.", "위험하다.", "유지 관리하기 힘들다."
그렇다. 주택은 춥고 치안도 상대적으로 취약하고 유지 관리하기 힘들다. 하지만 춥고 위험하고 유지 관리가 힘들기 때문에 주택은 자신의 보금자리를 스스로 가꾸어야 한다. 나는 거기에 삶의 중요한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EBS '건축탐구 - 집'이라는 프로그램을 즐겨보았다. 아파트를 '포기'하고 주택으로 옮겨간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들이 있다. 집을 투자의 대상으로 보고 시세의 변동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고, 스트레스를 받는 삶은 그만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구성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점이다. 모든 공간적 편의가 규격화되어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퇴근 이후, 쇼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는 일 이외에 딱히 할만한 일이 없다는 것이다. 상당히 공감했다.
정말 내가 주택에 살고자 결심한 것은 약간 다른 데에 있다. 딱 잘라 말하기는 힘들고 좀 설명이 길어진다.
오래 전, 문득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주 먼 옛날부터 세상의 모든 생명은 자연의 맨 바닥에 직접 닿은 채로 살아왔다. 인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서 우리의 삶을 보면, 공중에 떠 있는 콘크리트 바닥에서 생활하고, 땅을 덮은 아스팔트 위를 걷고, 플라스틱과 철로 만든 자동차를 타고, 시멘트로 만들어진 건물을 오간다. 지구의 속살을 단 한번도 밟아보지 않은 채 살아가는 것인데, 문득 이래도 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이 의문은 결코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분석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냥 순간 그런 감정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작지만 정원이 있었으면 했다. 밟을 수 있는 땅, 의자를 갖다 놓고 앉으면 발 아래 직접 만날 수 있는 땅이 있는 곳에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래서 어렴풋이 주택에 살고 싶었다.
또 하나는 비교적 최근의 경험 때문이다. 지금껏 나는 10개의 서로 다른 아파트를 옮겨다니며 살았다. 어린 시절 살았던 아파트에서부터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까지. 특히 결혼 후에도 참 많은 이사를 했는데, 한국에서만 5번의 이사를 했고, 하노이에서만 3번의 이사를 했다. 아파트마다 특색이 있고, 구조가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그 구조라는 것이 방 3개를 어떻게 배치했고, 화장실이 어디에 있고, 베란다를 얼마나 넓게 뺐느냐의 차이일 뿐이었다. 그렇게 규격화된 공간을 재미있게 쓰고 싶어 가구 만들기를 배워 아이들을 위한 맞춤형 가구를 만들면서 공간에 의미도 부여하고 변화를 주기도 했다. 확실히 건담을 만들거나 영화를 보는 것보다 재미있었다. 그러다 하노이에 처음 정착하면서 살았던 아파트에서 의외의 공간을 만났고, 그 이후 집에 대한 생각들을 조금씩 정리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하노이에 미딩못(MyDinh1)이라는 지역에 C6 아파트가 있었다. 그 아파트가 하노이에서의 첫 아파트였다. 타워형 아파트이고 방2개, 거실 1, 화장실 2 로 구성된 단촐한 아파트였다. 한국과 다른 문화여서 아파트 외형도 내부 구조도 낯설었고, 풀옵션이었던 아파트는 공간 배치나 가구도 낯설었다. 특히 베란다가 특이했는데, 우리처럼 건물을 앞으로 튀어나오게 설게된 베란다가 아니었다. 건물의 튀어나온 외벽 사이에 움푹 들어간 좁은 공간이 있는데, 그곳이 베란다였다. 이 공간은 정사각형에 가까운 형태로 꽤 넓었는데, 아이들이 이 공간을 좋아했었다. 이 작은 공간 하나가 아이들에게는 즐거운 공간이었고, 새로운 놀이터였다. 이때 나는 이 베란다만한 정원이라도 좋으니 작은 땅이 있는 주택에서 살고 싶었고, 귀국하면 주택에 살기로 다짐을 했었다.
우리 아이들은 여기서 숙제도 하고, 밥도 먹고, 인형과 피크닉도 떠났다. 심지어 일하는 아주머니 트후 씨가 우리에게 선물로 준 살아 있는 닭도 하루를 여기서 살았다. (결국 트후씨가 그 닭을 직접 베란다에서 잡아서 요리해 주었다.) 이런 공간이 주는 소소한 행복과 즐거움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만나는 잔잔한 파문이었고, 이런 작은 일탈은 삶을 여유롭게 하고 풍요롭게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이런 이유에서 나는 주택에 살고 싶다. 왜 주택에 들어가려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 좀 길다.
삶의 공간은 개인의 취향이고, 개개인의 삶의 방식이다. 세련되고 깨끗하고 편의시설이 갖춰진 공간을 원한다면 아파트를, 정원이 있는 독립적인 공간을 원한다면 주택을 선택하면 되는 것이다. 철저하게 취향의 문제이다. 또 하나 중요한 문제는 어떤 아파트를 선택하느냐, 어떤 주택을 선택하느냐인데 이 문제의 핵심은 예산이다. 정말 예산이다.
그래서 소방도로를 접하고 있어 주차가 가능하고, 치안이 비교적 안전하고, 해가 잘 드는 곳에 정원을 가진 연면적 40평 이상의 주택을 찾기란 내가 가진 한정된 예산 안에서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나 해외 생활하면서 이사비용, 정착비용, 인근 국가 여행 등 모아 놓은 돈 마저 조금씩 빼 써버린 상황에서는 더욱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협소주택에도 관심을 가졌었는데, 우리가 말하는 협소주택과 유사한 형태의 주택이 베트남에서는 일반적인 형태이다. 그 주택이 일명 '서장형 주택'인데 서장형 주택은 폭이 얇고 앞뒤가 긴 형태의 주택으로 아주 좁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벽 하나를 두 집이 공유하는 식으로 집들이 연결되어 있다.
하노이 외곽의 'An Khanh' 지역에 '스플렌도라'라는 아파트에 살았었는데, 아파트 단지 안에 '테라스 하우스' 구역이 있었다. 이 테라스 하우스는 베트남의 서장형 주택 형태에, 외부와 내부를 보다 현대식으로 고급스럽게 지어 놓은 주택 단지였다. 테라스 하우스를 보면서 좁은 땅이라도 작은 정원과 주택을 올리는게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재미있는 경험이었고, 실제로 이 테라스 하우스에 사는 지인들도 있었다. 만족도가 상당히 높았다. 우리가 생각하는 정방형의 땅이 아니라 좁고 긴 형태의 땅에 집을 짓는 것이 일상화된 베트남에서는 이런 구조의 집이 어디에나 존재했다. 가족들이 함께 어울리기를 기대하는 입장에서는 공간들이 너무 독립되어 있다는 느낌은 들지만, 그 나름 매력적인 공간들이었다.
여러 집을 보던 중 내가 원하는 조건에 어울리는 집을 계약했다. 그 집의 땅은 애매하게 자리한 다른 땅과의 관계, 주차장 요건 등으로 인해 땅 모양보다 더 좁고 더 긴 형태로 밖에 건물을 앉힐 수밖에 없는 35평의 작은 부지였지만 선뜻 구매하기로 결정했던 것도 어쩌면 베트남의 '테라스 하우스'에 대한 기억 때문일 것이다.
물론 조금 불안하긴 하다. 과연 이 땅에 우리가 원하는 집이 지어질 수 있을까? 특별하고 멋진 공간을 만들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작은 정원을 즐길 수 있는 집이면 된다. 그렇게 위안하면서도 하루에도 수십 번, 고민하고 검색하고 공부하고 그리고 희망을 갖고 또 걱정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어쨌거나 우리는 35평의 좁고 긴 형태의 땅에, 작은 정원과 3층짜리 주택을 지으려 하고 있다. 벌써 3주째 여러 건축설계사를 만나고, 여러 건축회사를 찾아가 상담하기를 여러 차례. 우리의 얘기를 잘 들어주고, 공정하고 정직하게 공사를 해줄, 그러면서도 우리의 예산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집을 지어줄 분들을 또 만나고 또 만나고 있다. 서두르지 말자고 생각하는데도, 마음이 조금씩 조급해질 무렵 괜찮은 건축회사를 만났다.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지만, 두번째 만남을 가졌고, 아직 계약은 하지 않고 있다.
큰 공사만 전문으로 하는 건축하는 친구가 있다. 지인의 집은 절대로 지어주지 않는다는 원칙을 절대로 깨지 않는 고집스러운, 그러나 아주 친한 친구이다. 설계사를 만나고, 건축회사에 다녀 오면 조언을 해주는데 현재까지 여러 조건들, 상담 내용들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를 해 주었다. 아마 지금 이 회사와 계약을 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곧, 본격적으로 집짓기에 대해 얘기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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