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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유치원도 가기 전 온가족이 방하나에서 셋방 살이 할 때 빼고는 아파트에서 살았다. 처음 아파트라는 곳에 살게 되었을 때 우리 집은 1층이었고, 두번째 아파트도 1층이었다.
그러다, 대학교 때 같은 아파트의 6층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우리 가족들은 드디어 1층을 벗어 난다며 좋아했었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좋았다. 하지만 뭔지 모를 허전함, 황량함이 있었다. 바닥에 붙어 있지 않고 공중에 붕 떠 있는 집, 창밖을 바라보면 나무와 땅이 아니라 수많은 건물과 그 건물들이 쏟아내는 불빛들이 눈에 들어왔다. 방에 들어가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거실에 나가봐도, 창문을 열어 봐도 뭔가 모를 황량한 기분이었다. 그런 황량하고 쓸쓸한 알 수 없는 기분에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이다. 그때 든 생각이 있다.
사람은 땅에 붙어서 살아야 하는거 아닌가?
그 당시에 나는, 주택에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그냥 사람은 허공에서 사는 것보다는 땅에서 사는게 좋은 것 같다. 그런 정도의 생각만 했었다.
당연하지만 우리의 삶은 아파트에서 시작해서 아파트와 아파트를 전전해가면 계속된다. 대한민국을 아파트 공화국이라고 할 정도니까. 내가 결혼해서 얻은 첫 집도 오래된 복도형 24평 아파트였고, 아이가 커가면서 옮긴 집도 26평 임대 아파트였다. 그리고 조금 오래 살 생각으로 얻은 집은 13층의 32평짜리 아파트였다. 하지만 늘 주택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오고 있었다.
늘 주택에 살고 싶다는 생각만 했을 뿐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우리가 사는 이 넓은 도시에서 어떤 특정한 공간에서 살고 싶다면 그냥 살면 되는 것을, 왜 아파트가 아닌 곳에 살게 될때는 큰 결심을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큰 결심이 필요했고, 결심하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렸다. 사실 따지고 보면 너무 쉬운 문제다. 수많은 여러 아파트와 수많은 여러 주택 중 하나를 고르면 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부턴가 그냥 '집'의 기본이 '아파트'가 되어 버린 것이다. 어쨌든 아파트에 살다 주택에 가게 되면 다들 왜 주택에 가려고 하는지 묻는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질문하지 않는다.
왜 주택에 가는 것에 큰 결심이 필요한지 요즘 조금 알 것 같다. 아파트는 인스턴트 주택, 획일화된 주택이라고 해야할까? 적당히 깨끗한 집을 골라 살다가 마음에 안들거나 문제가 생기면 다른 아파트로 옮겨 가면 된다. 옮겨 간 또 다른 아파트도 마찬가지여서, 특별하지는 않지만 누구나 적당한 공간에 적당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그래서 아파트를 선택하는데는 큰 결심이 필요 없는 듯하다. 하지만 주택을 제 각각 다르고 집마다 건축주의 개성이 담겨 있어, 공간 선택이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주택마다 나름의 방식으로 공간이 나눠져 있고, 각기 다른 공간이 펼쳐져 있는데, 그래서 공간 선택이 중요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주택을 선택하게 될 때는 오랜 고민과 큰 결심이 필요한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주택을 보러 다니면서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던 집이, 오래된 주택을 업자가 아파트 느낌으로 수리해 판매하는 집이나, 오래된 주택이 잘 팔리지 않으니 싼 가격에 고쳐서(아파트 리모델링 수준) 내놓은 집이었다. 그런 집들은 대부분 옛날에 지어진 집이고, 큰 고민없이 만들었을 공간들로 채워져 있고, 그마저도 세를 주기 위해 사정없이 잘라 구획을 나눠, 작은 방들이 어울리지 않는 작은 거실이나 부엌과 함께 섞여 있는 그런 집이 많았다. 대부분 70년대 80년대 지어진 집들이고, 산업화 시대에 적합했을 공간을 그대로 둔 채, 단열재만 덧붙이고 벽지만 덧바르고 창호만 새로 달아 번듯하게 덧씌웠을 뿐이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별로 좋아하지 않는 용어이지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간 인식은 분명 산업화 시대의 공간 인식과 다를텐데도, 그런 것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겉치레만 해 둔 경우가 많아 오히려 아파트가 공간적으로 더 매력적이었다.
내가 주택을 원했던 이유는 땅을 밟고 살아야 할 것 같아서이다. 그리고 아파트처럼 획일적인 공간이 아니라 뭔가 가족들이 우리의 방식으로 살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고, 작은 마당이나 정원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베트남에서 귀국하면 꼭 주택에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하노이에서 살다 귀국하면서 집을 구하기 위해 주택을 보러 다니게 되었는데, 그때도 꽤 여러 집을 보았던 것 같다. 하지만 2월에 귀국해 3월이 되기 전에 집을 구해야 하는 상황에서 주택을 선택하기가 어려웠다. 주택은 아파트처럼 쉽게 구할 수 있는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우리는 전세를 얻어 2년을 살았고, 이제는 주택을 목표로 올 여름부터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먼저, 우리는 주택을 고르는 우선 순위를 정했다.
1. 소방도로변의 오래된 주택(고치지 않은) 대지 40평 정도.
2. 조그맣더라도 마당이 있는 집
3. 주택 리모델링에 적합한 집
예산) 1억~2억의 노후주택 + 리모델링 1억.
딱 여기까지가 우리의 조건이었다. 하지만 소방도로변의 마당이 있는 집들은 모두 가격대가 높았다. 간혹 가격대가 적당한 주택들도 있었다. 대부분 1억 중후반이었는데 모두 리모델링이 불가능한, 허물고 새로 짓지 않으면 안될 그런 집들이었습니다. 신축에 최소 2억을 생각하면 예산은 훌쩍 초과해 버린다.
그러다 점점 생각이 바뀌었다. 작은 대지에 지어진 마산의 오래된, 1억 이하의 집이 있다면 집을 사서 허물고 협소주택을 신축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 내가 살았던 스플렌도라의 '테라스 하우스'처럼 3층, 4층짜리 작은 주택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자 조금 더 마음의 여유와 선택의 여유가 생겼다.
그렇게 집을 보러 다니면서 공간에 대한 생각들도 많아지고, 아무런 계획에 없던 주택 신축도 고려하기 시작했다. 세상에는 집이 다양하듯이 집에 대한 생각도 다양하다는 것을 느꼈고, 더 넓은 시선이 필요하다는 것도 느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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