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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소주택을 짓는 것도 가능하다는 데까지 범위를 넓히자 가능성은 더 많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소방도로접'이라는 조건이 붙은 이상 만족스러운 집을 구하기 쉽지 않았다.
소방도로를 접하고 있으면 땅값 자체가 비쌌고, 가끔 가격대가 괜찮으면, 상당히 경사진 땅에 찌그러진 삼각형의 집이거나 지나치게 좁고 어두운 분위기의 골목이 얽히고 섥혀 있는 곳이 많았다. 또 소방도로를 접한 매력적인 주택들은 약간만 손보면 되는 정도였고 그래서 가격대가 높았다. 내가 살고 있는 구도심 마산을 기준으로 보면, 2층 구조의 40평대 이상의 주택들은 대부분 3억 정도에 가격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래서 집을 보면 볼 수록 우리의 예산 범위는 높아져가고 있었다. 급기야, 우리는 최대 2억 6천까지 집을 구하고, 최대 1억에 고치는 걸로 조금 계획을 수정했고, 이게 최고 가능 금액으로 못을 박았다. 총 예산 3억 6천.
그러던 중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한국에 귀국했을 때, 주택을 알아 봐 줬고 지금의 아파트를 중개해준 분이었는데, 우리 부부가 아주 좋아할 것 같다며, 두 개의 집을 보여줬다. 하나는 60평 대지에 올려진 50평 주택이고 하나는 35평 대지에 허물어야 하는 집이 있는 물건이었는데, 둘은 아주 상반된 집이었다. 60평 집은 40년 된 주택인데 그때 당시 스킵 플로워 형태로 지어져 다양하고 재미있는 공간들이 아주 많은 집이었다. 지하층과 다락층까지 포함하면 연면적이 60평 정도는 되어보였다. 딱 보는 순간 마음에 들었다. 우리가 원했던 다양하고 개성있는 공간들이 가득한 그런 집이었다. 다양한 공간이 있었지만, 각각의 공간도 큼직했다.
먼저 현관 오른쪽으로 반층을 내려 가면서 지하층(공부방으로 쓰고 있었음)이 있고, 현관을 가로지르면 주방이 있다. 현관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반층을 올라가면 거실과 방과 화장실, 또 돌아 반층을 올라가면 복도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작은방 2개와 화장실, 또 반층을 올라가면 거실과 방과 화장실, 그리고 그 안쪽으로 다락방과 옥상으로 가는 작은 문이 있었다. 각 층마다 여기에 또 공간이? 문을 열면 또 공간이? 그러면서 끊임없이 탐험하는 느낌이었다. 상당히 재미있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이 집은 3억 3천이었다. 가격 조정 가능하다고는 했지만 수리를 생각하면 예산 범위를 너무나도 초과하는 집이었다.
그리고 60평 집의 바로 한 집 건너 옆에 있는 35평의 철거 해야 하는 집도 같이 봤다. 한눈에 봐도 노후 정도가 심해 신축해야만 하는 집이었지만 60평 집과 같은 소방도로를 접하고 있어 위치가 좋았고, 또 35평이면 협소주택 신축도 충분히 가능했다. 우리가 원하는 공간을 계획하고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35평 집은 9천5백이었다. 설명이 필요 없는 집이었다. 시세 대비 싸기도 했지만, 예산을 고려하면 딱 적합한 집이었다. 협소주택을 지어보자는 쪽으로 결론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협소주택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예산도 적절하다 싶어, 예쁘게 지어보자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 지역의 협소 주택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때 우리는 한 설계사의 블로그를 보게 되었다.
이 작고 예쁜 집은 우리 동네에 있었고, 공간에 대한 깊은 고민이 담긴 블로그였다. 우리가 주택을 짓게 되면 이 분에게 설계를 맡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더 많은 자료들을 찾고 공부했다. 협소주택을 검색하고 공간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확실히 협소주택은 좁다는 사실을, 예쁘기는 하지만 충분히 좁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3억이라는 돈을 들여 집을 짓는데 지어 놓고 나서 좁아서 답답해서 후회가 된다면, 건너편에 보이는 60평의 그 집이 자꾸 눈에 밟힌다면 어떨까? 자꾸 욕심이 생겼다.
게다가, 부동산에서는 우리가 60평에 관심을 가지자, 60평 집을 2억8천까지 가격 협상을 맞춰 놓은 상황이 되었고 신축을 하려던 우리는 더 깊은 고민에 빠졌다. 결국 부동산의 제안으로, 건축업자를 불러 같이 집을 본 후 수리와 신축을 두고 대략의 견적을 뽑아 보기로 했다.
두 명의 건축업자를 만났는데, 두 명 모두 60평 리모델링은 권하지 않는 분위기 였다. 리모델링 비용으로 1억 5천에서 2억을 제안했다. 2억이면 40평 주택의 신축 가격이었다. 여러면에서 건축업자분들은 신축을 추천했다. 예산 면에서도 신축으로 가야하겠지만, 협소주택. 우리의 가장 큰 고민은 너무 좁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정말 많은 생각들을 하고 많은 그림을 그렸다. 신축과 리모델링 사이에서 고민 했지만, 정작 60평 집을 어떻게 고칠까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고민을 하다, 결국 결정을 내렸다.
"고치자."
그리고,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며 구조 변경을 해 보고, 리모델링 업체를 알아보고 두 군데 문의를 했고, 가능하면 정말 1억에 고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1억에 고친다고 해도 3억 8천이다. 정말 확실한 건 조금 더 수선비를 아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리모델링으로 마음을 먹고 업체와 질문과 답변을 주고 받았다.
그러던 중,
문득 내가 사는 공간이 중요하고 가치있기는 하지만, 이 정도의 대출을 안고 가야만 하는가? 냉정하게 물었다. 1억을 아끼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마음껏 여행을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네 가족이 유럽도 두 번이나 다녀올 수 있을 돈이다. 이 돈을 대출 받는다면, 좀 힘들게 고생하면 4년, 여유를 가지고 길게 보면 10년이 넘는 시간을 대출금을 갚으며 살아야 했다. 4년만 고생해서 빚 갚으면 만족스러운 집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부터 4년이 지나면 큰 딸은 대학에 가게 된다. 대출금을 갚고 나면, 또 대학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할 상황이 올 것 같았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필요와 가능과 욕심과 희망 사이에서 균형이 필요했다.
건축은 예산의 문제다. 집은 클수록 좋고, 넓을수록 좋다. 자재는 비쌀 수록 좋은 것은 당연하다. 오로지 예산의 문제일 뿐이다.
우리는 다시 협소 주택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이건 순전히 예산의 문제였고, 어디까지 무리하느냐인데, 협소주택을 잘 설계해 각 방과 거실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34평 아파트 정도의 공간만 나와 준다면 우리는 더 욕심내지 않기로 했다. 이제 협소주택을 지어도 충분히 답답하지 않은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증거를 찾기 위한 검색을 시작했다.
그때 우리는 협소주택을 검색하며 여러번 스쳐지났을 '락유당'을 만났다. "아~ 전에 본거다." 눈여겨 봤다. 그리고 몇 개의 비슷한 협소주택들을 만났는데 거기서 희망을 찾았다. 충분히 크게 지을 수 있다. 거실, 주방, 안방, 화장실 1층, 자녀방 화장식 작은거실 2층. 이 간단한 구조를 바꾸면 3층이 되는 것이었고, 꼭 거실과 주방이 한 층에 같이 있을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베트남의 서장형 주택을 다시금 떠올렸다.
집은, 우리가 필요한 가치 있는 공간만 이루어진다면 그 정도에서 합리적인 지출을 하면 되는 것이었다. 평생 우리 가족이 추억을 쌓아갈 공간으로서의 가치와 현재의 예산 거기에 집중하기로 하고, 다시 건축업자 두 분을 차례로 만났다. 우리의 질문은 하나였다.
얼마만큼의 공간이 나올까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34평 아파트 거실 크기의 거실과 주방, 화장실과 방이 나올 수 있을지를 물었다. 30평형 대의 아파트는 전용면적이 25평이다. 주택에서 40평을 짓는다면 1층 25평만 뽑아도 32평 아파트의 공간이 나온다는 대답을 들었다. 생각해 보겠다고 했더니 대략의 도면을 작성한 후 연락이 왔다. 1층부터 3층까지 총 60평도 가능하다. 일조권 등을 고려해도 3층까지 충분히 가능하다 했다. 집에 돌아오자 마자 실제 평수를 생각해 도면을 그렸다. 다음 지도의 거리재기로 실제 비율에 따라 테두리를 그리고 오차 범위 생각해 80센티씩 건물을 안으로 넣고 주차 공간도 넣었다. 그리고 정원은 남쪽 벽에서 2미터를 띄웠다. 그리고 남은 부분이 건물이 된다. 건물을 그리자 꽤 넓은 공간이 나왔고, 평수로 환산해도 감이 오질 않아 거실에 앉아 34평 확장형 아파트의 거실, 화장실, 방의 크기를 줄자로 재고 비교를 했다.
그렇게 비전문가의 비전문적인 도면이 나오게 되었고, 신축을 해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확신을 얻었다. 주차를 세로로 해야 하는데, 가능하다면 평행주차로 바꿔보았고, 꽤 괜찮은 공간이 나올 것 같았다.
결국, 35평 집을 계약하기에 이른다. 이제 좋은 설계사를 만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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